이 종학 (Johnny Lee)

우리는 지금 다양한 디지털 뮤직 환경에서 살고 있다. 단순히 CDP를 사용하거나 혹은 PC에 담긴 음악 파일의 재생에 그치지 않고, 스트리밍 뮤직, 네트웍 플레이어 등 새로운 옵션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너무나 빠른 시간에 다양한 기술이 등장해 숨이 가쁠 지경이다.

물론 보수적인 애호가라면, 자신의 CD 랙에 있는 음반을 소중히 듣고, 어쩌다 PC에 리핑해서 담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관심이 많고, 그 발전 속도를 몸소 체험해보고 싶다면, 시장에는 이미 어마어마한 양의 모델들이 즐비한 상황이다.

< CDT, DAC, 프리앰프, 네트워크 스트리밍 플레이, 인터넷 라디오 그리고 뮤직 라이브러리의 기능을 탑재 >

특히 많은 하이엔드 메이커들도 뛰어드는 과정에서 부메스터가 무척 인상적인 제품을 내놨다. 그 이름은 뮤직 센터 111. 당연히 레퍼런스 라인에 속하는 기기로, 넘버 원을 뜻하는 “1”이 무려 3개나 동원되었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원더풀을 연발할 만큼 뛰어난 퀄리티를 보여준다. 지금부터 그 내용을 차근차근 훑어보자.

본 기는 몇 개의 기능이 합해진 제품이다. CDT, DAC의 조합은 물론이고, 다양한 아날로그 및 디지털 입력을 받아 프리앰프로 출력하는, 일종의 프리앰프 기능도 있다. 거기에 인터넷 라디오, 뮤직 라이브러리, 네트웍 플레이어 등의 추가 기능이 더해진다. 이 내용을 모두 훑어보려면 상당한 양의 원고가 필요한 만큼, 여기서는 개괄적인 소개를 해볼까 한다.

< 색감이 선명하고 뚜렷한 7인치 디스플레이  >

우선 본 기를 바라볼 때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큼직한 디스플레이창이다. 실제 크기는 7인치로, 도트수가 많고, 색감이 빼어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창은 항공기에서 쓰이는 사양을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역시 부메스터다. 사실 부메스터의 프리와 DAC, CDT 등을 단품으로 구한다면, 그 가격대가 만만치 않다. 본 기는 이 두 가지 외에 여러 기능이 더해졌으므로, 부메스터라는 브랜드, 특히 레퍼런스급이라는 상징성이 갖는 의미를 이해한다면, 그 하나하나에 높은 점수를 줘도 무방할 것이다. 일단 프리앰프부터 알아보자.

본 기는 세 개의 아날로그 입력과 6개의 디지털 입력이 가능하다. 이중 아날로그는 모두 XLR이고, 디지털은 3개의 RCA 및 3개의 Toslink가 제공된다. 상당히 풍부한 입력단이라 하겠다. 이 프리단은 당연히 서버단, DAC부 등과 분리가 되며, 철저한 아이졸레이션이 이뤄졌다. 따라서 서로 간섭할 일이 일체 없다고 봐도 된다.

프리단을 자세히 살펴보면 완전 대칭형으로 구성된 것이 눈에 띤다. 이 부분에서 정통 부메스터의 접근법이 그대로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DC 커플이 된 신호 전송 경로는 당연히 짧고, 그 안에 일체의 캐패시터가 개재하지 않는다. 한편 아날로그 아웃풋은 프리 및 DAC 등이 공히 사용하는 바, 동사는 특별히 “X-AMP2”라 명명한 서킷을 투입하고 있다.

이어서 CDT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전면에 작은 슬롯이 있는 바, 여기에 CD를 삽입하면, 데이터 베이스가 자동으로 감지한다. 그런데 어떤 음반을 넣어도 대부분 앨범 재킷이 눈에 들어온다. 재킷뿐 아니다. 트랙 리스트와 뮤지션에 대한 정보도 빼곡하다. 특별히 마이너에서 발매해서 몇 장 팔리지 않은 희귀 앨범을 제외하면 대부분 이런 정보가 제공된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했더니, 본 기가 스스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참, 대견하기 짝이 없다. 그냥 CD에 담긴 정보를 내놓는데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정보를 웹을 통해 찾아오는 것이다. 특히, 현재 듣는 곡의 앨범이 수려한 컬러와 이미지로 디스플레이창에 제공될 때, 더 듣는 맛이 나는 것은 물론이다.

< 데이터를 먼저 읽고 에러를 정정한 후 출력하는 FEC 시스템 >

또 CD를 넣으면, 그냥 읽을 것이냐(read) 또는 리핑(ripping)할 것이냐 묻는다. 그러나 어떤 설정을 택해서 음악을 들어도, 리얼 타임으로 절대 재생하지 않는다. 오디오 데이터를 한 번 이상 더 읽은 다음에 출력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FEC라고 부르는데, “Forward Error Correction”의 약자다. 즉, 미리 읽고 에러가 있는 부분, 예를 들어 스크래치가 심하게 난 CD같은 경우, 그냥 스킵하거나 혹은 보충하는 식의 정정을 미리 시행하는 것이다. 한편 CD를 읽건, 혹은 음성 파일을 읽건, DAC에선 두 개의 옵션이 제공된다. 24bit/96KHz 사양이 있고, 24bit/192KHz 사양이 있다. 이것은 음악 소스에 따라 선택해서 들으면 된다. 무조건 사양이 높다고 음이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RAID 1 구성으로 데이터 손상 대비 >

여기서 잠깐 음성 데이터에 대해 알아보자. 실은 마치 거울처럼, 각각 1TB씩 제공되는 하드에 나눠서 정보를 수록(RAID 1 구성)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그래서 어느 한쪽이 에러가 날 경우, 다른 쪽에서 수정, 보충해준다. 어렵게 구해서 리핑한 파일이 손상될 경우,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게 미리 손을 써둔 셈이다.

시스템 저장 디스크는 SSD(Solid State Disk)가 제공되어, 빼어난 퍼포먼스를 자랑하고, 업데이트 또한 가능하다. 또 UPS란 기능도 있다. “Uninterruptible Power Supply”의 약자로, 갑자기 정전 상태가 날 경우, 그로 인해 음성 파일에 데미지를 주는 것을 미리 방지하는 기능이다. 이 경우, 본 기가 저장한 일정한 전원이 비상으로 가동되면서, 안전하게 기기를 끄는 역할을 한다. 사실 이 모든 부분은, 갑작스런 사태로 인해 소중한 음성 파일이 손상되거나 혹은 사라지는 일에 대한 만반의 대책이다. 조금이라도 피씨 파이를 해본 분들이라면, 이 기능이 얼마나 소중한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로 간단한 조작 >

본 기에는 300만개 이상의 앨범을 저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처리 속도가 무척 빠르고 또 정확하다. 조작도 무척 간단해서, 아이패드에 앱을 깔아서 사용하면 된다. 논리적이면서도 직관적이어서, 조작법을 배우는 것 자체가 무척 쉽다. 이것도 큰 메리트라 하겠다.

한편 본 기는 CD, 음성 파일 등 다양한 디지털 디바이스에 대응하면서 또 인터넷 라디오까지 가능하다. 그럴 경우, 소스에 따라 갑자기 게인이 큰 것이 걸릴 수 있다. 이럴 때 알아서 볼륨을 조정해주는 기능도 있다. 참, 무릎을 탁 칠만한 서비스라 하겠다.

만일 111을 단순한 뮤직 서버 정도로 생각하면, 그 가격대에 놀랄 것이다. 하지만 전술한 대로 CDT, DAC, 프리앰프, 인터넷 라디오 등 다양한 기능이 레퍼런스급으로 제공되는 것을 보면, 그리 비싸다고 하기도 뭐하다. 실제로 양질의 파워를 걸면 수준급의 하이엔드 음을 즐길 수 있다. 이번에는 마크 레빈슨의 No. 53 파워에 윌슨 오디오의 사샤 2를 연결해서 들었는데, 무척 퀄리티가 높고, 조작도 간편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지금부터 그 시청평으로 들어가겠다.

첫 곡은 뒤메이-피레스 컴비가 연주한 세자르 프랑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A장조>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동등한 위치에 서서 협연하는데, 그 의도에 잘 부합되는 연주다. 일단 바이올린의 경우, 결이 좋고, 고역으로 치달을 때의 에너지도 죽지 않으며, 지판을 짚거나 활에 힘을 주는 강도의 조절 등 세밀한 부분이 다 포착된다. 피아노의 경우엔 유려하게 전개되면서 타건에 힘이 있고, 잔향도 깊다. 두 악기의 영적인 대화가 차분히 전개되는데, 거기에 독특한 시정이 더해진다. 이런 것을 음악성이라고 하나?

이어서 안네 조피 무터의 사라사테 <치고이네르바이젠>을 듣는다. 초반의 격한 기세로 몰아칠 때의 에너지가 압권이다. 거기에 마치 카르멘처럼 자유분방하면서 힘이 넘치는 무터가 등장하는데, 절정의 기량과 집중력이 최고조로 발휘되어 있다. 그 기세가 제대로 이쪽에 전달된다. 중간에 차분히 전개될 때의 독특한 분위기라던가 반대로 몰아칠 때의 야성미 같은 것이 적절히 조화되어 듣는 재미가 보통 아니다. 확실히 소스기로서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니키 패롯의 는, 녹음 자체가 좀 어수선한 것이 사실이다. 악기의 음상도 크고, 정위감도 시원치 않다. 물론 그런 약점도 다 드러내지만, 한편으로 본 소프트의 장점도 잘 표현한다. 패롯의 목소리가 갖는 독특한 질감과 서정성, 베이스의 당돌함, 거침없는 악단의 기세 등이 일체 가감이 없이 나온다. 사실 모든 녹음이 최상의 수준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잘된 녹음만 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경우, 어느 정도 커버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 노골적이어도 곤란하다. 그런 면에서 본 기가 재현하는 이 곡의 즐거움은 각별한 데가 있다. 이럴 때 오랜 기간 음을 만져온 메이커만의 내공이 느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