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자 빌 우드맨이 꿈꾸던 소리

1990년 9월 튠을 알리는 오보에의 긴 여음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세이지 오자와가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지휘대에 올라섰다. 그리고 긴 여운의 트럼펫 팡파르가 울려 퍼지면서 말러의 교향곡 제 5번이 시작된다. 1층과 2층, 그리고 발코니를 가득 메운 2,600여 명의 청중들은 암스테르담의 콘체르토 게보우, 빈의 무직 페라인잘과 더불어 세계 3대 공연장으로 손꼽히는 보스톤 심포니홀의 사운드에 흠뻑 젖어들어 오케스트라의 다이내믹과 아름다운 음색에 몸과 마음을 내맡기기 시작한다. 이곳은 홀의 폭이 비교적 좁은 장방형(Shoe-Box형이라고도 한다)으로 직접음과 반사음의 시간차가 작아 음의 친밀도가 높고, 250Hz 대역의 잔향이 풍부해 양감이 풍성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흔히 공연장의 사운드에 중요한 평가항목 중 하나인 잔향에 대해 체계적인 이론을 발표해 20세기 공연장 설계에 큰 영향을 미친 사빈(W.C.Sabine) 교수가 이 공연장의 음향설계 자문을 맡았으니 그의 이론은 거의 100년의 역사 속에서 반복적으로 필자와 같은 호의적인 청중들에 의해 검증되고 있는 셈이다. 공연장의 전체 용적과 비교해 볼 때 적정한 비례의 무대와 높은 천정고를 통해 확보한 폭넓은 다이내믹 레인지는 가장 큰 편성의 곡에서도 막힘없이 시원스럽게 울려 주며, 각 악기의 명료도 또한 높아 음악에 집중하는 것을 쉽게 만들어 준다.
이 웅장한 말러의 교향곡 5번(Philips 423 141-2, 1991, 세이지 오자와 지휘,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의 사운드는 6,70년대에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의 음반작업을 통해 녹음장소의 공간감을 뛰어나게 표현해냈던 프로듀서이자 녹음엔지니어인 빌헬름 헬벡(그는 마이크를 많이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이 만들어낸 것이고, 보스톤 심포니홀의 높고 아름다운 벽체와 천정, 웅성거리는 객석의 청중들과 무대 위의 연주자와 악기, 이 모든 것을 음악과 함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 주는 것은 영국의 ATC SCM 50 TSL이라는 그리 크지 않은 체구의 스피커이다.

보스턴 심포니홀, 빌헬름 헬벡 그리고 녹음기술의 다양한 기교를 부리기 힘든 실황음반이라는 조화를 갖춘 이 음반은 다소 장황한 서두를 통해 간접적으로 밝혔듯이 음악뿐만 아니라 공간을 재생하는 오디오 기기, 특히 스피커의 리뷰에서 시각적 이미징을 체크하기에 매우 적절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어 필자의 레퍼런스로 종종 사용된다.
탁월한 미드레인지 유닛을 통해 만들어지는 입체적이고 정확한 스테이지 구현으로 유명한 ATC의 스피커는 그 특성 때문에 일반 오디오 시장과 프로용 시장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그런 ATC에서 창사 3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SCM 50 TSL에 첫 번째로 선택된 음반에서 보고 싶었던 공간의 표현력은 ATC의 명성에 걸맞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개선된 트위터와 전설적인 미드레인지, 베이스 드라이버의 조합은 그 속도와 양감의 조화에 있어서 동사의 상위 모델인 SCM 100에 결코 뒤지지 않는 성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녹음된 공간의 용적과 크기를 가늠하는데 부족함이 없고, 홀 사운드는 가볍지 않고 밀도 있게 배치되어 음악에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프로듀서가 앉았을 법한 위치에서 펼쳐지는 각 악기군의 정위감과 스테이지의 사실적이고 입체묘사는 청각적으로나 시각적으로도 하이엔드라는 문구 자체를 실감하게 한다.
대부분의 팝이나 락, 재즈 연주자들이 스튜디오에서 새로운 음향공간을 창조하는 것과 달리 클래식 음악의 연주자나 녹음 엔지니어들이 좋은 어쿠스틱을 찾아 녹음장비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이곳저곳에서 저마다의 취향에 맞는 장소들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생각해보면 SCM 50 TSL의 뛰어난 공간 재생능력을 통해 전달되는 뉘앙스는 그들의 노력에 대한 가장 큰 포상이 아닐까?

슈퍼 리니어 기술이 채용된 하이가우스의 마그넷 유닛, 소프트 돔 기술과 같은 ATC의 대표적인 기술에서부터 매그놀리아 적층합판을 이용한 인클로저까지 동원가능한 동사의 모든 물량과 기술력이 집성되었다고 표현하는 이 모델은 기존의 틀을 유지하되 예전과 달리 시장지향적인 생존전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우선 과거 앰프의 매칭과 그 구동성에서 떨치던 악명을 벗어나고자 더 개선된 음색의 트위터를 장착하여 해상력을 높였고, 가격에 걸맞는 모양새를 의식해서인지 이탈리아의 피아노 메이커인 파찌올리 피아노의 마감을 연상시키는 매그놀리아 적층합판을 이용한 화려한 인클로저 디자인을 채용한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창립자인 빌 우드맨이 말했던 “소리에서 성공한 스피커는 변하지 않는다” 하는 목소리를 생각해 보면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스피커는 그 예전의 ATC에서 풍기는 고집스러운 모습은 일견 사라지고 다소 요란하게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30주년을 기념해 상징적으로 만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외면의 변화는 그리 의식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런던의 바비칸홀 SACD 실황음반인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1번(LSO5030,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은 연주단체가 만든 LSO Live 시리즈라는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들의 실황녹음을 중심으로 제품을 구성하는 독특한 레이블에서 발매된 것이다. 이 레이블의 모든 실황음반을 녹음하는 토니폴크너는 하이페리온과 같은 레이블과 오랜 작업을 통해 공연장의 녹음에 대해 나름대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베테랑 엔지니어이며, 그를 통해 녹음되고 있는 바비칸홀의 사운드는 필자가 기억하는 본래의 사운드와 비교해 볼 때 장점과 약점을 모두 여실히 투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음반은 SACD의 장점인 풍성한 저역과 양감은 좋지만 음의 집중력은 다소 떨어지는 편인데 본기의 시청에서는 ATC가 가진 특유의 밀도 있는 중역을 통해 음향적 긴장이 적절히 이루어져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못했다. 이 공연장은 보스톤 심포니홀과 비교해 종축에 비해 횡축의 비율이 넓은 편이며, 악기간의 명료도는 좋지만 음악의 다이내믹은 떨어지는 편이다. 20세기 음향설계에서 앞서 소개된 사비네 교수와 더불어 양대 주류로 인정받는 독일 출생의 건축가 D.애들러의 기하학적인 음향 접근방식이 반영된 바비칸홀은 음의 확산을 중요시하여 모든 객석에서 고른 음압 분포를 갖도록 해 상대적으로 보스톤 심포니홀과 같은 다이내믹과 풍만함은 부족한 편이다. 토니 폴크너는 이런 문제 때문에 SACD의 녹음방식인 DSD 레코딩을 도입하여 일반 CD에 사용되는 PCM 녹음방식에서 부족하게 느껴지는 저역의 느낌을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ATC SCM 50 TSL에 사용된 미드레인지의 소프트 돔 유닛은 그런 엔지니어의 의도에 아주 적합한 재생기준을 가지고 음향환경을 재구성하고 있다.

본기의 탁월한 공간재현능력에 감탄하면서 필자가 꺼내든 음반은 언제나 그랬듯이 리스트의 소나타(DG 471 585-2GH, 2003, 윤디 리 피아노)였다.

“바흐에게 오늘날의 피아노와 같은 악기가 있었다면, 그는 전혀 다른 음악(피아노에 맞는)을 썼을 것이다.”

저명한 음악학자 아놀드 쉐링의 이 말은 피아노라는 악기가 서양음악의 역사 속에서 고전시대 이후의 작곡가에게 불어 넣어준 창조적 영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만든 새로운 음악의 대변자로 피아노를 선택했으며, 1818년 청력을 잃어 가던 베토벤에게 기증된 새 브로드우드 피아노는 그의 열혈주법과 오케스트라적 아이디어를 담아냈다. 쇼팽은 평생을 피아노 음악만 만들고 연주하며 살았고, 리스트의 광대무변한 연주는 수많은 피아노의 액션과 해머를 부수어 가며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낭만주의의 화려하고 풍성한 울림을 선사했다.

연륜 있는 오디오 애호가라면 피아노의 음향을 오디오 시스템을 통해 만족할 만큼 구현해 내는 것이 생각만큼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것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우선 좋은 피아노로 녹음된 음반이 생각만큼 많지 않을 뿐더러, 피아노의 실제 스케일을 재현하는 것이 어렵고, 또 전자의 이유로 스케일이 작아지면 다이내믹과 디테일한 음색을 재생하는 것 또한 힘들어진다. 여하튼 피아노도 다른 악기와 마찬가지로 메이커에 따라 다른 스케일과 음색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세계 콘서트홀의 거의 대부분이 비치하고 있는 스타인웨이 사의 피아노는 오늘 피아노 음향의 한 기준으로 말할 수 있을 만큼 독보적이다. 스타인웨이는 뉴욕과 함부르크 2개의 공장에서 제작되고 있는데, 전자의 소리가 스케일이 크고 부드러우면서 단정한 편이라면, 후자는 전자에 비해 화려하고 날카로운 금속성을 지닌 근골의 남성미를 가지고 있다. 리스트의 소나타를 함부르크 스타인웨이로 연주하는 쇼팽 콩쿠르의 우승자 윤디 리 또한 강한 타건과 빠른 패시지를 면도날조차 들어갈 틈이 없이 무서운 집중력을 연주해내고 있는 이 음반은 에밀 베를린너 스튜디오에 소속된 유럽 최고의 녹음 엔지니어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베를린의 텔덱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이 음반에 담겨 있는 피아노의 소리는 정말 빼어나다. 그것은 단순히 녹음을 잘해서가 아니가 피아노와 그 피아노를 다루는 테크니션의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이고, 좋은 피아노를 고를 줄 아는 연주자와 톤마이스터의 합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여태껏 필자는 ATC SCM 50 TSL과 Lamm M1.2 레퍼런스 파워 앰프와 Lamm L2 레퍼런스 프리앰프의 조합으로 시청하기 전까지는 이 음반에서 공연장에서 듣던 함부르크 피아노가 가진 강선의 굉음과 금속성을 정확히 일치시켜 보지 못했다.

앰프와의 조화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ATC가 만들어내는 연주자 손끝의 탄현과 액션의 동작, 해머링을 통해 선이 울리고 강철 프레임이 울리고 진동판과 온몸을 떨어 피아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하나하나의 동작이 입체적으로 구조물처럼 쌓여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각 음의 속도와 폭이 실물의 피아노를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 보이고, 그 음악과 악기를 감싸고 있는 공간을 그 모습 그대로 청각적으로 세우고 싶은 것 바로 이것이 지금 병석에서 사경을 헤메고 있는 창립자 빌 우드맨이 그의 인생을 바쳐 그토록 꿈꾸며 만들어내고 싶은 소리가 아니었을까?

수입원 : DST코리아
가격 : 3,000만원
구성 : 3웨이 3스피커
인클로저 : 베이스 리플렉스형
사용 유닛 : 우퍼 23.4cm 슈퍼 리니어, 미드레인지 7.5cm, 트위터 2.5cm
크로스오버 주파수 : 380Hz, 3.5kHz
재생주파수대역 : 80Hz-17kHz(±2dB)
임피던스 : 8Ω
출력음압레벨 : 85dB/W/m
크기 : 30.4x71.7x42.5cm
무게 : 41.1kg

김현석|레코딩 엔지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