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는 존재감

시청이 끝날 무렵 볼더의 진정한 이미지가 나타났다. 프리 810과 모노 파워 850은 어떤 기기들과 매칭하느냐에 따라 변하는 그런 류가 아니고 어느 기기와도 제 몫으로 버티어 낼 것이다. 그리고 매칭 기기가 매우 일반적으로 정평 나 있는 무난한 기기로 알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서도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 제품을 마니아 입문기라 해도 손색이 없다.

어느 논객이 말하기를 오디오의 수준 평가는 원음, 즉 실연주를 절대 기준으로 하며 또한 어떻게 그것과 가장 근접한 재생을 하느냐가 관건이라 했다. 이같은 이론은 절대적 기준으로 굳어져 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그 논객과 다르다. 어느 작곡가든 그들의 모든 곡들을 그 작곡의 구성 요소와 원리에 의해 완성하지만 절대적 기준치는 처음부터 존재치 않는다. 물론 편곡이나 변주곡 그리고 원곡을 중심으로 한 모든 패러디까지도 포함되는 것들 또한 음악 형식 중 하나일 뿐이지 위와 같은 뜻에서는 동일하다 할 것이다. 다만 그 같은 원곡들에 대한 퀄러티의 기준치라는 것은 청중들과 실연주 체계에 따라 그 변화의 폭은 매우 커진다.

실연주 체계란 작곡 작품과 악기군 및 지휘자를 포함한 연주자와 연주장들 그리고 재생 장치와 방법들이 상호 연관되어 기능 작용하는 모든 관계를 말하며, 이를 벗어난 원음의 절대적 기준치는 실로 무의미한 것이다. 그래서 청중들의 연주 결과에 대한 원곡 이해와 그 후의 열락은 십인십색이다. 청중들의 이 같은 십인십색은 연주 실행 체계에 의한 연주 결과 또한 절대적 기준치를 부정하는 것과 직결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음악 문화는 실연주 체계 또는 재생 체계가 일부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개입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연주 체계의 모든 악기들 또한 동일한 악기일지라도 그 악기의 사용 환경과 연주자의 연주 기법에 따르는 악기의 고유 톤에서는 절대 기준이라는 것은 없으며 기준은 청중과 연주자 생각에 따라 수시로 변화한다 할 것이다.

결국 원음 퀄러티의 절대적 기준은 무시되어야 옳을 것이고 또한 시공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며 이에 더하여 청중들의 몫이 또 한 번 걸러지기 때문에 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오디오의 퀄러티는 애초에 실연주를 절대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의미하다 할 것이다. 동시대인들의 오늘은 프랑스의 사상가 쟝 보드리야르의 허상세계(시뮬라시옹)를 빌지 않더라도 실상인 실연주보다도 허상인 재생 연주가 동시대인 모두에게는 더 현실적이며 기회적으로 우선하기 때문에 실연주가 원음의 절대 기준이라는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어떻든 허상이든 실상이든 그것들이 존재하는 것들은 바흐가 존재했기 때문이고 또한 마일즈 데이비스 때문이기도 하다. 이같은 오디오 문화 그 곳에는 볼더가 우뚝 서 있다.

그 중 볼더 800 시리즈는 볼더 패밀리에서 가전제품 가격대(?) 수준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볼더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리스닝룸에는 볼더 프리 810과 모노 블록 파워 850, 그리고 스피커는 한센의 prince, 그리고 코드 Blu와 DAC64가 세팅되어 있다. 파워 850의 디자인이 매끈하지는 않지만 절제된 미학이 돋보이는 절삭 가공 섀시의 세련미에서 볼더의 모든 제품군에서 느껴지는 제품 디자인 콘셉트가 느껴지고 특히 노브의 액센트로 한 조화가 눈에 두드러진다. 그러나 제품 그래픽은 성이 안 차는 데가 있다. 전체 크기로 보아 뒷면을 제외하고 사방이 눈에 잘 띄게 되어 있는 입체물이라는 것을 의식한 듯 그 좌우 면을 숨구멍까지도 매우 정성스럽게 디자인했다. 프리 810은 파워 850과도 같은 디자인 콘셉트인데도 매우 평범하다. 제품 몸체의 가로나 세로에 따른 균형을 고려했으면 하는 것이 사족사(蛇足思)였으면 좋으련만 제품 디자인의 아이덴티티(디자인 동일성)로 얻어지는 장점보다는 오히려 이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파워 850은 무게가 적은 편에 작기도 해서 스피커와 연결하기도 쉬울 텐데도 그 연결 고리를 큼직하게 해서 연결이 쉽도록 되어 있고 인풋 커넥터는 3핀 밸런스뿐이다. 프리 810은 인풋 4개, 아웃풋 2개가 모두 밸런스이다. 볼더의 첫 느낌은 무엇보다도 미세한 여운의 질감이 눈에 잡히는 것이다. CD 몇 장을 교체한 지 1시간 남짓 지나자 볼더의 캐릭터가 서서히 나타난다. 현의 끝부분이 때에 따라 매끄럽지 못한 것이 스피커 쪽인지도 또는 다른 쪽에 원인인지도 그 판단이 애매해진다. 녹음에 문제가 있는 CD를 걸어 보았을 때 이 같은 점이 기우였음을 알 수 있다. 확실히 직진성이 우수했다. 그만큼 단점을 완연하게 잡아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현악보다는 피아노 질감 쪽에 흥미가 더해간다. 그러나 퍼커션은 우수했고 보컬 또한 완벽에 가까웠다.

정말이지 잘 익고 질 좋은 과즙을 먹는 기분이 든다.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초고역 쪽과 초 저역 쪽이 유약하고 밋밋할 때 일어나기 쉬운 현상인 것인가? 과유불급이라, 지나치거나 불필요한 초고역과 초저역을, 다시 말해서 초하이엔드에서나 볼 수 있는 가청 대역 이상의 영역이 불필요함을 분명 의식한 결과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물론 생산 관리 측면도 있겠으나 이같은 점을 비켜 가면서 명품이 나타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여기 800 시리즈라는 이 작품은 성공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번 볼더는 스피드감에서 두드러지기보다는 듣기 편하게 안정된 음을 쏟아 내면서 또한 매우 점잖다. 전반적 음 밸런스의 무게감은 허리에 위치하면서 그 위나 아래로 치우치지 않는다. 그리고 유별난, 아니 조금 무거운 색채감, 즉 채도가 낮게 나타나지 않고, 다만 볼더 패밀리로부터 느껴지는 담채 성향도 은은하다. 그리고 이 같은 점은 흑백이든 색채이든 여러 번 칠해서 그리는 채색 기법이라기보다는 색채나 흑백이든 어느 것을 단번에 아니면 한두 번에 그려낸다는 수묵 기법으로 해서 마치 큰 캔버스에 결백스럽게 나타나는 그림 같다. 프리파워 810과 850은 초보자들에게는 매우 비싸지만 전문 마니아, 특히 마니아 입문자들에게는 아주 저렴하다고도 볼 수 있다.

시청이 끝날 무렵 볼더의 진정한 이미지가 나타났다. 프리 810과 모노 파워 850은 어떤 기기들과 매칭하느냐에 따라 변하는 그런 류가 아니고 어느 기기와도 제 몫으로 버티어 낼 것이다. 그리고 매칭 기기(코드의 Blu와 한센의 prince)가 매우 일반적으로 정평 나 있는 무난한 기기로 알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서도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이 제품을 마니아 입문기라 해도 손색이 없다. 시청이 끝나자 볼더 프리 810과 모노 파워 850의 진정한 실체가 나타났다.

먼저 제품 디자인이 그 가격대에 걸맞으나 프리•파워가 다르게 양분되어 나타났다. 볼더 패밀리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지는 850과 810은 그러나 묶어서 보았을 때 디자인 측면에서는 성공도 실패도 아니다. 그리고 소리의 철학이 멋지다. 초고역과 초저역에서의 합당할 만큼의 배제성 의도는 전체에서 확실하게 요대(腰帶)를 휘어잡게 한다. 그래서 탄탄하게 안정되고 무리 없게 뻗어남을 느낄 수 있다. 생산관리와 마케팅 측면에서도 납득할 만한 가격대는 초보자도 하이엔드 마니아도 비켜가게는 하지만 마니아 입문자를 유혹하고도 남는다. 800 시리즈의 프리 810과 파워 850의 제품 콘셉트는 중용의 철학을 근간으로 태어났으며 하이엔드 입문자에게는 좋은 제품이 될 것이다.

월간오디오 발췌

조영철 | (사)한국일러스트아트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