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사운드의 명맥을 잇다.

볼더가 폭넓은 애호가 층을 겨냥한 800시리즈를 새롭게 출시했다. 800시리즈는 프리앰프 810, 모노블록 파워 앰프 850과 스테레오 파워 앰프 860, 그리고 인티앰프 865로 구성되어 있는데, 볼더의 특징과 성능을 계승하면서도 가격적으로 크게 양보(?)한 제품들이다. 이로써 볼더는 전 가격대에 걸쳐 경쟁력 있는 제품 라인을 완성하게 되었다.

볼더는 프로용 기기를 생산하다가 가정용 하이엔드 기기 메이커로 변신하여 눈부신 성공을 거둔 케이스. 오래 전 그들이 생산하던 투박한 외관의 제품들과 현재의 화려한 라인업을 비교해 보면 도대체 이 제품들이 같은 메이커에서 만든 것인가 놀랄 정도이다. 볼더는 호화 하이엔드 2000시리즈를 생산하면서 마니아들 사이에서 최고의 앰프 메이커로 군림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알루미늄을 깎아 만든 고급스런 외관과 함께 포노앰프마저도 모두 풀 밸런스 구성으로 밸런스 단자만을 장착하고 있는 것이 특징. 2000시리즈의 훌륭한 외관과 출중한 성능은 발매 초기부터 전 세계 하이엔드 애호가들을 관심을 집중시켰지만 좀처럼 도달하기 어려운 높은 가격대는 기기의 훌륭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애호가들의 접근을 현실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볼더에서는 더 많은 애호가들에게 어필하기 위하여 가격을 낮추고 성능을 조금 양보한 1000시리즈를 출시했는데 아직 가격적인 면에서 많은 애호가들로부터 널리 사랑받기에는 조금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런데 볼더가 이 점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더 폭넓은 애호가 층을 겨냥한 800시리즈를 새롭게 출시했다. 800시리즈는 프리앰프 810, 모노블록 파워 앰프 850과 스테레오 파워 앰프 860, 그리고 인티앰프 865로 구성되어 있는데, 볼더의 특징과 성능을 계승하면서도 가격적으로 크게 양보(?)한 제품들이다. 볼더로서는 엔트리 급인 800시리즈를 출시함으로써 2000시리즈의 고급기 및 1000시리즈의 중급기와 함께 전 가격대에 걸쳐 경쟁력 있는 제품 라인을 완성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번에 리뷰하는 제품은 800시리즈 중 860 스테레오 파워 앰프.

800시리즈의 외관은 2000시리즈나 1000시리즈에 비해 무척 단출해졌다. 860 앰프의 전면 패널에 사용된 알루미늄 패널의 두터움은 여전하지만 크기가 작아서인지 왜소하다는 느낌이다. 부분적으로 단을 내어 변화를 준 전면 패널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어색한데 아마도 필자의 머릿속에 상급기의 모습이 너무나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외관상 가장 큰 변화는 방열판으로써 예전에 통 알루미늄을 드릴·밀링 가공한 멋진 방열판은 일반적인 핀 형태의 방열판으로 간략화된 점. 냉각 핀의 주위에 금속 그릴을 씌워 놓았는데 얼핏 겨울철 스토브를 연상하게 하는 디자인이다. 물론 크게 낮아진 가격을 생각하면 특히 소리가 아닌 모습 때문에 이것저것 트집 잡는 것이 옳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스토브(?) 대신 방열 핀이 보이는 무난한 디자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한편 내부 회로는 상급기의 좋은 점들을 충실히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력은 150W로 상급기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풀밸런스 구성이고 순간 전류 공급 능력이 탁월한 대용량의 강력한 전원부를 갖고 있고 부하를 감지하는 회로를 갖고 있어서 부하가 변동하더라도 출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부를 살펴보면 앰프 앞쪽으로 대형 토로이달 트랜스가 자리잡고 나머지 공간은 2층으로 나뉘어져 전원부와 컨트롤 부는 아래쪽에, 그리고 증폭부는 위쪽에 장착한 합리적인 설계. 패턴까지 검정색으로 코팅되어 회로 구성을 알아보기 어려운 증폭부의 양면 기판에 표면 실장 부품들이 빼곡하게 차 있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 표면 실장 기술을 사용하면 같은 면적에 훨씬 많은 수의 부품을 장착할 수 있어서 설계의 자유도가 증가하고 제품이 컴팩트화되는 것은 물론 자동화를 통하여 생산 효율을 높이고 원가를 낮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표면 실장 부품을 사용하여 동일한 크기에 더욱 복잡하고 정교한 회로를 도입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디오 기기의 설계 역사에서 무척 중요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Simple is Best’를 금과옥조로 삼는 많은 애호가들은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는 제대로 설계되었다는 전제하에서, 부품이 적은 회로보다는 복잡한 회로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간단한 회로에서 만들어지는 소리는 부품의 특성이 강하게 나오며 제품의 품질이 부품의 편차에 크게 의존하게 되므로 설계자가 원하는 미묘한 소리를 얻기 어려우며, 부품들을 선별해서 사용해야 하고 따라서 부품의 개수는 적더라도 가격은 오히려 높아지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에 복잡한 회로를 사용하면 부품 하나하나의 특성이 부각되지 않으며 최고급 부품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회로를 적절하게 구사함으로써 설계자가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다. 마크 레빈슨이나 제프 롤랜드 외에 표면실장 기술을 채택한 대다수의 하이엔드 기기들은 무척 복잡한 회로 구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고급 부품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도 이 사실을 대변한다.

앰프 뒷면도 단출하다. 밸런스 입력만을 지원하며 조이기 쉬운 대형 바인딩 포스트를 갖고 있는 것은 상급기와 공통. 바인딩 포스트는 마크 레빈슨과 함께 필자가 사용해본 단자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다. 마크 레빈슨의 것이 스페이드 단자만을 쓸 수 있는 것에 비해 볼더의 것은 바나나도 사용할 수가 있어서 무척 편리하다. 상급기들이 가진 산업용 대전력 전원단자는 출력이 작기 때문인지 일반 IEC단자로 변경되었는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전원 케이블을 바꾸며 음의 변화를 음미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기 때문에 오히려 환영하는 입장이다.

소스기기로는 노스스타 192 CDT/익스트리모 세트를 쓰고 프리앰프로는 패스 2.5를 연결, 그리고 스피커로는 클라라를 먼저 연결해 보았다. 훌륭하다. 소리는 섬세하다기보다는 화끈한 편이고 가늘기보다는 굵은 쪽이며 펼쳐지기보다는 쇄도하는 타입. 호방하며 힘이 넘치는 느낌이 대단하다. 클라라 스피커가 힘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예전에 클라라를 볼더 2010과 2050에 잠깐 물려 본 적이 있었는데, 2000시리즈가 스피커 뒤쪽으로 깊게 음장이 펼쳐지면서 힘을 숨긴 다소 소극적이고 정교하며 섬세한 울림인 반면, 860은 매칭한 패스의 프리앰프 때문인지 힘을 감추지 않고 화끈하게 밀어붙이는 느낌이 더 강하다. 요즘 기기들의 특징과 음색은 점점 세계화되어 국적이 의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리를 듣다보니 아메리칸 사운드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JBL 5500을 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스피커를 JBL 5500으로 바꾸어 맸다.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지금까지 다양한 앰프로 물려 듣던 JBL에서 다소곳하면서 정교하고 섬세하면서도 다이내믹하고 호방한 흠잡을 곳 없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단연 대형 스피커, 특히 JBL이나 웨스트레이크와 같은 호방한 미국산 대형 스피커와의 매칭을 권하고 싶다. 리뷰 기기를 돌려보내고 한참 후에 볼더의 공장 내부 사진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한쪽 구석에 웨스트레이크의 넓적한 대형 기기가 놓인 것을 보고 연신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메리칸 사운드는 아직 건재하다.

월간오디오 발췌

최상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