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tech Inter-Connect Cable

실텍의 진면모가 확연하게 드러나다

London/ Paris/ New York/ SQ-28 Classic MK2/ SQ-88 Classic MK2

'실텍은 주인을 세 번 바꾼다’는 말이 오디오 마니아 사이에서는 경구처럼 전해진다. 이것은 지독하게 심한 번인 기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신품을 사서 길들이다 지쳐서 내치고, 다음 사람이 그 고생을 더하다가 포기하면, 세 번째 물려받은 다음에야 제 소리를 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독하다. 케이블의 단자 처리 등을 부탁 받아 해주다가는 결국 케이블 제작자가 되어 버린 잘 아는 지인은, 이것을 단자 처리 미숙으로 돌리기도 한다. 애당초 실텍의 데뷔는 불행했다. 워낙 고가인 탓에 벌크선의 형태로 대량 수입되어 대충 WBT 단자를 달고는 팔려 나갔다. 그나마 피복에 프린트된 상표마저 쉽게 벗겨지면서 온갖 모조품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것들이 뒤엉켜서 시장이 혼란스러워졌다. 필자가 만난 실텍도 그리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당시로서는 꽤 고급 모델이었는데 단자처리가 어이없을 정도로 엉망에다가 무엇보다 들려주는 소리가 고급스러운 은선의 소리와 차이가 있었다.

주변을 돌아봐도 실텍을 사용하는 마니아는 별로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텍은 고급스러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은선 케이블의 최고로 손꼽힌다. 즉 신화적인 존재다. 얼마 전 세대(Generation)를 바꾼 새로운 시리즈가 등장하면서 다시 한번 오디오 마니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는 제법 사용자도 늘고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무엇보다 이전처럼 벌크 형태가 아닌 완제품으로, 또 세련된 모습으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했다.

실텍 케이블의 리뷰를 맡으면서 일면 ‘주인을 세 번 바꾼다’는 말 때문에 걱정도 되었던 것이 사실이나, ‘실텍 케이블이 좋다고 하던데’ 하면서 아쉬워하던 많은 오디오 마니아 중에 한 사람으로서 그 실텍의 달라진 모습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텍의 새로운 라인업은 최상위에 Signature, 그리고 Classic MK2, MXT Professional의 세 가지 시리즈다. 이번에 소개할 제품은 미들 클래스인 Classic MK2의 SQ-88과 SQ-28, 그리고 엔트리 모델인 MXT Professional의 뉴욕, 파리, 런던의 세 가지 모델 등이다. 일반적인 특성을 포괄적으로 논해 보자면 우선 가장 큰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의 신뢰감을 회복했다는 점이다. 가격대는 더욱 올라갔지만(특히 상위기종의 경우) 최소한 족보에 없는 케이블이 탄생할 가능성은 없다. 마무리가 깔끔한 완제품의 박스.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벌크만 접해온 국내 소비자에게는 정말 절실한 부분이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제너레이션 5의 신기술이니 케이블 야금기술의 변화니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마니아에게는 ‘정품’ 실텍이란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7-8년 전 내가 들은 실텍은 과연 올바른 소리를 내주었던 것일까? 지독하게 오랜 번인 시간을 요구하는 실텍을 단기에 리뷰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실텍의 본 실력을 뽐내줄 것인가? 이런 사실들이 무척 궁금했다.

사실 이렇게 같은 회사의 제품을 여러 개 한꺼번에 리뷰할 때 당연히 하위기종부터 들으면서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 어떤 부분이 좋아지고 개선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반대로 하면 이런 점들이 나빠진다는 식의 리뷰가 되고, 논조가 나쁜 점만 말하게 되는 식으로 흘러가 버리게 될 것이다. 칭찬은 많이 할수록 좋고, 악담은 되도록 돌려서 말해야 되는 오디오 평론가에게 이것은 난처한 시청 법이다. 하지만 필자는 받아온 케이블 중 가장 고급품을 필자의 가장 좋은 케이블과 바꿔 놓고는 오디오 마니아로서의 궁금증을 먼저 해결하고야 말았다.

우선, 이전에 내가 들었던 (FTM 시리즈의 하나로 추정되던) 그 케이블은 확실히 무언가 잘못된 것이었다. 지독한 번인 시간이 아직도 적용이 되는지(당연히 필요하겠지만) 모르겠지만 주인을 세 번 바꿀 정도의 소리는 절대 아니다. 앞으로 더 좋아지겠지만 신품 상태로도 훌륭한 소리였다. 나의 앰프가 마치 진공관을 달아놓은 듯 품격 있고 감성적으로 울린다. 은선 냄새는 별로 나지 않고, 예로부터 마니아 사이에 와전되던 실텍의 그 풍성하고 부드러운 비단결 같은 울림을 들려준다. 놀라운 것은 확연하게 늘어난 무대의 깊이. 한 번도 내게 들려 줬던 적이 없지만, 동료 마니아가 열변을 토하던 실텍의 그 전설적인 음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제 가장 단 것을 맛보았으니 나머지는 어찌 해야 할지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SQ-28 Classic MK2

SQ-88 Classic MK2

SQ-28 Classic MK2

SQ-88 Classic MK2

  가격 : 70만원, 150만원

런던, 파리, 뉴욕 순으로 그레이드가 정해진 구리, 은, 그리고 금의 3가지 소재의 가는 선을 꼬아 만든 제품인데, 단가 때문인지 WBT 단자는 사용하지 못한 듯하다. 끈끈한 재질의 고광택 피복은 이전 실텍 재질과 유사한 듯하다. 가격대로 보면 실텍으로서는 염가의 보급제품에 해당된다. 신품임에도 약간씩 프린팅이 안 된 것인지 벗겨진 것인지 모르지만 지워진 부분도 있고, 이전처럼 시간이 되면 상표가 모두 지워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런던은 0.3mm의 130여 개 PCOFC 구리선 가닥과 2가닥의 고순도 실버-골드 가닥(Strands)으로 구성된 모델이다. 파리는 160여 개에 4가닥의 실버-골드선이, 뉴욕은 200가닥 정도에 6개의 골드실버가 추가된다. 마치 엿가락 나누어 주듯 조금씩 더 넣어주는 PCOFC와 개평을 주듯 2가닥씩 더 들어가는 ‘Pure Silver Gold Strand’가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이에 따라 수치상 용량과 왜곡에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청감상의 미묘한 차이도 생긴다. A-B 테스트를 해보면 소리의 거친 정도가 우선 확연히 드러난다. 상위기종에서 하위기종으로 전환하게 되면 마치 번인이 안 된 듯 입자가 거친 소리로 나온다. 반대로 상위기종으로 갈수록 소리가 매끄럽고 나름대로 품격이 있다. 어느 편이나 평균적인 가격대의 케이블보다 무대가 깊이 빠지는 편은 장점. 강렬한 개성을 뿜어내기보다는 잔잔하고 음악적인 특성을 보여 준다. 저가형으로는 드물게 중립적인 성향이나, 중립적인 저가 케이블과 다르게 무대의 크기나 소리의 감촉이 남다르다. 실텍 특유의 음색이 배어나는 결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성의 없이 만들거나, 상표를 팔아먹는 장사 속으로 만든 보급기가 아닌 당당한 실텍의 소리가 난다. 앞서 말했듯, 실텍의 음색이 진공관 앰프답다면, MXT Professional 라인의 케이블은 마치 저가 진공관을 사용한 앰프 소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Paris

London

New York

MXT Professional

    London·Paris·New York

      가격 : 17만원, 25만원, 33만원

SQ-88과 SQ-28, 그리고 이것보다 더 상급기종인 SQ-110, 이렇게 세 기종으로 구성된 미들 클래스의 케이블. 모두 파란색 피복에 흔히들 말하는 뱀가죽으로 둘려 있어 고급스러운 이미지이다. 중간에는 검은색의 원통형 박스를 달고 있다. 역시 같은 재질의 가닥을 얼마나 투입했는지 차이가 나고 X 밸런스드 마이크로 기술을 통해 노이즈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G5의 야금술로 정제된 케이블 소재를 얻어 냈다. 단자는 전통적인 WBT 단자를 사용한다. 이 같은 개선으로 얻은 음질은 앞서 말한 것처럼 획기적인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투명한 음색을 가지게 되었다. 기존 사용자의 논평도 이전보다 반응이 빠르고 훨씬 더 선명하고 깨끗해졌다는 평을 인용하지 않더라고, 일반적인 동급의 케이블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투명도와 해상력을 가진다. 생각 외로 신품의 번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듯,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소리가 나온다.

앞서 평했듯 마치 전혀 진공관답지 않은 내 앰프가 빈티지 진공관에서 나는 듯한 묘한 표현을 해낸다. 날이 선 앤드류 맨츠의 바이올린(아르모니아 문디) 음색이 듣기 좋게 울려 나오고, 깨끗한 배경을 가진 오케스트레이션이 멀리서 들려온다. 서덜랜드의 미묘한 음색이 중앙에서 피어오르면 더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유독 자디스나 고급 진공관 앰프 사용자 중에 고집스럽게 실텍을 찾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텍이 들려준 소리는, 그 같은 방향의 음질을 추구하자면 좋던 싫던 실텍 이외에는 대안이 없을 것 같다.

 MXT Professional의 경우 비록 가격은 배가 되지만 조금 무리해서라도 상급기종을 권하고 싶다. 고가인 Classic MK2의 경우는 SQ-28보다 2배 가격인 SQ-88을 무리해서 구입하라고 말하기는 출혈이 좀 크다. 아무래도 가격이 가격이니 만큼 코스트를 염두에 두어야 될 것 같다.하지만, 어느 모델을 택하건 실텍은 역시 명성에 걸맞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RCA나 오슬람 먹관같이 깊은 울림을 내주는 이런 좋은 케이블을 우리는 옷감 끊듯 싹둑싹둑 잘라서 대충 쓰면서 그 음질을 논했다니. 새삼 답답한 마음도 들고 씁쓸하다. 정말 좋은 소리가 그냥 묻혀 버릴 뻔했다.

[ 출처 - 월간 오디오, 2006년 9월호/ 오디오 평론가 - 신우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