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tech MXT Professional Series

자연스러운 발성 속에 스며든 절제의 미학

이번에 필자는 덴마크의 중견 케이블 업체인 실텍에서 내놓은 MXT 프로페셔널 시리즈의 스피커 케이블 세 종을 시청했다. 런던 LS, 뉴욕 LS, 파리 LS 등이 그것인데, 가격의 고하를 막론하고 이들은 필자로서는 처음으로 접하는 실텍의 케이블이다. 사정이 이런 만큼 이들 제품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할 만한 자격이 필자에게 있는지 의문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시그너처, 클래식, 클래식 MK2 등과 같이 실텍의 음향 철학을 대변하는 다양한 시리즈를 접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리고 꽤 긴 기간 동안의 에이징이 필요하다는 실텍의 케이블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무시하기 힘든 상황에서 이런 의문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따라서 이번 시청 작업에서 런던, 뉴욕, 파리 등의 케이블에 대하여 필자는 아주 신중한 접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MXT 프로페셔널 시리즈는 개발하는 데 3년이 걸린 것으로서, 시리즈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MXT’라는 이니셜은 ‘다양한 금속을 혼용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초고순도 동, 은, 금 등의 소재를 ‘전력 동축형’(power coaxial)이라고 하는 배열로 구성한 방식이 바로 MXT이다. 외관을 살펴보면 이들 제품에서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케이블의 종단을 나사 형식으로 마무리하는 s-콘(s-conn) 시스템을 채용하여, 말굽·일자·바나나 형 등 다양한 형태로 나오고 있는 스피커 단자를 사용자가 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는 점이다.

판매가가 낮은 것부터 열거하면 런던, 파리, 뉴욕 등의 순서로 되어 있는 이들 케이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절제력과 자연스러움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단시간에 걸친 테스트의 결과를 요약한 것이므로 함부로 단정할 일은 아니지만, 이들 케이블은 선율선의 흐름 및 다이내믹에 대한 적절한 통제, 섬세한 색채 표현 등을 유연하게 통합하는 정연한 음향 이미지를 한결같이 연출하고 있었다. 등급의 차이에 따라 음향의 윤곽, 해상도, 심도 등을 연출하는 데 있어서 이들 케이블이 저마다 드러내는 음향 특성과 완성도의 차이 또한 눈여겨볼 만했지만, 제품 등급의 가격 상승폭이 20만원 정도이므로 애호가들은 단순히 가격의 높고 낮음만을 제품 선택의 기준으로 삼기보다는 자신의 음향 취향을 강하게 내세워도 좋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바로 이것이 중급 케이블을 고르는 재미인 것이다.

London LS : 이번에 시청한 MXT 프로페셔널 시리즈의 엔트리 레벨에 속하는 염가의 케이블이 바로 런던 LS이다. 그러나 판매가가 40만원대 초반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런던 LS를 과연 입문용 모델이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입문용이란 실텍의 음향을 저렴한 가격으로 즐긴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실텍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런던 LS는 100 가닥 이상의 OFC와 은-금 두 가닥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신호 손실이 매우 적다는 케이블이라는 아주 간단한 설명만을 붙여 놓고 있다. 따라서 기술 내용 그 자체에 관심이 많은 애호가라면 이처럼 간략한 설명에 대하여 불만을 가질 법도 하지만, 정작 이 케이블의 음향 특성 또는 메시지는 아주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안정감과 우아함의 조화이다. 이 케이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중저음역의 두터운 텍스처를 기반으로 한 피라미드형 대역 밸런스이다. 그 결과 이 케이블에서는 음악 표현의 중심 대역이 중음역과 중저음역으로 내려가면서 안정감 넘치는 흐름과 선율선의 유연한 조화를 중시하는 음향이 떠오른다. 그러나 여기서 흥미를 끄는 것은 이 과정에서 선율선의 추진력이 떨어지거나 음향 자체에 불필요하게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 케이블에서는 절제된 발성을 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유연하게 어우러지는 우아한 선율선, 온화한 색채 표현, 음악 표현에 필요한 음영을 적절히 연출하는 섬세한 고음역 등을 실어 올리는 모습이 잘 살아나고 있다. 음향의 윤곽이 좀더 예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해상도가 높은 시스템에서 진가를 발휘할 만한 케이블이다.

Paris LS : 실텍의 홈페이지에 ‘높은 파워 핸들링 능력과 대단히 생생한 음향’, ‘뛰어난 가격 대비 성능’, 그리고 ‘내구성이 좋은 소재’ 등과 같이 간단히 소개를 하고 있는 파리 LS는 이번 시청에서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케이블이다. 필자의 메인 시스템까지는 아니더라도, 필자에게 시청을 의뢰해 오는 시스템을 테스트하기 위한 케이블로 사용하고 싶은 느낌이 드는 케이블이었다.    

이 케이블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특성을 살펴보면, 상중하 어느 한 곳도 군더더기를 허용하지 않는 깔끔함과 탄력을 살려내는 정연한 대역 밸런스, 포르티시모에서도 산만하게 흐르지 않은 고음역, 들숨과 날숨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유려한 발성, 섬세함과 정연함을 아우르는 온화한 색채 표현,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명도가 떨어지는 법이 없는 음악의 내성부, 선율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통합되는 다이내믹, 그리하여 어떤 경우에도 흐려질 기미 없이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떠오르는 선율미 등이다. 이쯤 되면 찬사가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이 케이블이 보여 주는 뛰어난 음악성에 대한 필자의 평가만큼은 추호도 양보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러나 이 케이블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은 대목은 녹음에 따라 달라지는 미묘한 음향 특성을 아주 예민하고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살려내는 능력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음향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기보다는 자신의 음향 특성으로 적절히 소화해 내는 능력이 뛰어난 케이블이 바로 파리 LS이다. 사진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애호가까지 설득하기는 힘들겠지만, 음악성이 뛰어난 음향을 선호하는 애호가라면 한 번쯤 눈여겨볼 케이블이 파리 LS이다.

New York LS : MXT 시리즈의 레퍼런스 모델이 바로 뉴욕 LS 케이블이다. 판매가만 80만원대인 만큼, 하이엔드 입문 기종으로 구성된 시스템에 어울리는 케이블이다. 실텍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대단히 강력하면서도 뛰어난 음향 컨트롤 능력, 대단히 낮은 수준의 왜곡, 그리고 8Ω에서 1만 와트를 넘는 출력을 핸들링하면서, 그와 동시에 미묘한 뉘앙스와 광활한 공간감을 믿기 힘들 정도로 정밀하게 연출하는 대단한 녀석(beast)’이라고 이 케이블을 묘사하고 있다.

과장이 조금 섞인 듯한 이들의 자랑은 사실일까? 이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하기 전에 뉴욕 LS가 연출하는 음향을 먼저 요약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케이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실텍 특유의 절제된 발성을 바탕으로 하여 구축되는 정연한 대역 밸런스, 명쾌한 음향 윤곽과 생생한 선율선을 투명하게 연출하는 뛰어난 해상도, 순도가 높은 깔끔한 음색, 절제력과 섬세함을 아우르는 단단한 저음역, 음악 표현의 중심 대역을 명쾌하게 연출하는 당당한 중음역, 화려함과 예리함을 겸비한 강건한 고음역 등이다.

그러나 이 케이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이상의 특성들 가운데 어느 하나 과도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어떤 조건에서도 잘 정제된 음색이 전면에 떠오르면서, 절도가 넘치는 당당한 음향 조형이 살아나고 있지만, MXT 시리즈가 한결같이 보여 주는 섬세한 조형 감각을 놓치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하이엔드 시스템 사용자들이 원하는 음향, 그러니까 투명함과 명료함, 섬세함과 화려함 등이 깔끔한 조화를 이룬 음향을 연출하는 케이블이 뉴욕 LS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수입원  : 디오플러스 (031)906-5381

가격 : 런던 LS(41만원), 파리 LS(60만원),  뉴욕 LS(80만원)

[ 출처 - 월간 오디오, 2006년 10월호/ 오디오 평론가 - 박성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