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ra

Quinta

음악을 향한 이탈리아의 유려한 멋

기계로 그냥 뚝딱 만들어내는 제품은 없다. 이것이 오페라의 자랑이다. 가장 보급기라 해도 일정부분 수작업이 가해진다. 그것이 좋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머나먼 땅에서 어떤 사람이 음악을 위해 무수히 손질했던 제품이 나의 손길과 포개진다. 쾌감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해 중 가장 음악 듣기에 좋은 계절은 언제일까? 흔히 겨울이라는 답변이 나온다. 아늑한 방에서 문을 닫아걸어도 겨울인지라 가족 누가 불평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각자 모두 자기 방문을 닫아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가장 간섭받지 않는 계절이라서 그런 답변이 나오는 것일까? 또는 늦가을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낙엽이 지고 흐린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 창밖으로 그런 하늘을 보며 음악 듣는 맛이 또 그럴싸할 것이다. 그런데 여름은 아예 제외하더라도 나는 겨울이나 늦가을보다도 5월이 가장 좋다. 창밖에 적당히 색깔이 짙어져 가는 신록이 있고 바람은 상쾌하기 짝이 없다. 집안에 있어도 공기가 맑아지고 창이라도 열어놓을라 치면 폐부에 신선함을 더해주는 다디단 내음이 흘러들어 온다.“

어느 5월 밤의 매력이여. 그대 사랑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 나에게로 다가오는구나”라는 바이런의 시 구절도 있지만 기묘하게도 5월 밤에는 모든 음악이 더 가슴속에 파고든다. 폐쇄적으로 방문을 꼭꼭 닫아걸고 무슨 음모를 꾸미듯이 음악을 들어야 하는 겨울이나 늦가을과 달리 창을 반쯤 열어놓고 앉아있는 것이 더 좋은 계절, 온 청각을 소리에 쏟아야 하는 부담도 좀 줄어드는 것 같은, 여유로워지는 계절. 그것이 바로 5월이다. 아무에게도 특별히 부담을 주지 않고 연말처럼 조바심도 없고 정초처럼 머리가 무겁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음울하게 진종일 음악을 켜놓지 않고 두어 시간 듣다가 마루로 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계절인 것이다. 그러한 계절, 그러한 5월에 마땅하게 어울리는 스피커를 한 기종만 골라내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 될 것인가.

아마 나는 오페라의 제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고가도 아니고 그렇게 호화롭지도 않고 아무에게나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5월과 같은 여유로움과 대범함이 어쩐지 이 스피커에서는 냄새 맡아지기 때문이다. 듣지 않고 마냥 내버려 두어도 항상 음악을 연주하는 것만 같은 그런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스피커, 다가가서 한 번쯤 매만져 보고 싶은 스피커, 누가 오면 그 곁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 드는 그런 스피커. 독특한 인테리어와 향취를 지닌 스피커라면 오페라의 제품을 제외하고서는 그리 쉽게 만날 수가 없다. 그래서 AV로 쓰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거실에 홈시어터를 꾸미기로 한다면 무리해서라도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들 제품이다. 수천만원씩 들여 집안 개조 공사를 하기 전에 간단한 도배공사만 하고 그 앞에 이 스피커를 세워놓기만 해도 수천만원짜리 인테리어를 가볍게 깔아뭉갤 수 있는 마력을 이 제품들은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제품은 지난 호에 소개했던 세콘다의 상위 기종이다. 키도 더 늘씬하게 커졌고 유닛의 숫자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밀폐형에서 베이스 리플렉스형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외양의 생김새는 엇비슷하다. 아니 똑같다. 크기만 달라졌을 뿐이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프랑스나 그 나라의 제조사들은 이제 오페라 같은 제품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표절이라고 단박 돌팔매가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 나라의 제품들은 지금도 멋과는 약간 거리가 멀다. 왜 이렇게 큰돈 들이지 않고서도 귀품 나게 스피커를 만든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을까. 이탈리아의 경찰관 한사람도 알아냈는데 그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페라 스피커의 창시자 지오바니 나스는 경찰관이었다. 그가 오페라를 창시한 1989년, 그의 모토는 확실해진다. 세계의 모든 스피커들이 획일적이고 일정하기만 한 동일성, 그 단조로움을 깨버려야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과연 이탈리아 사람다운 발상이고 번득이는 안목이었다.

과감히 원목을 쓰고 전면과 상부와 하부, 측면, 후면에 모두 마감처리를 하며 회절방지, 그런 쓸데없는 명목을 내걸지 않고서 전체를 곡선처리를 하여 마치 이 스피커들은 늘씬한 미녀가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는 형상을 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것도 허리의 벨트나 코르셋이 은은히 비쳐 나오는 것 같은 형상을 한 채 말이다. 그 사람은 천재다. 거기에 나는 단연코 한 표를 던지고자 한다.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뭐 조금 낫군’ 하는 것은 쉽다. 정작 그 사람은 평생을 연구해도 이런 디자인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계로 그냥 뚝딱 만들어내는 제품은 없다. 이것이 오페라의 자랑이다. 가장 보급기라 해도 일정부분 수작업이 가해진다. 그것이 좋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머나먼 땅에서 어떤 사람이 음악을 위해 무수히 손질했던 제품이 나의 손길과 포개진다. 쾌감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5웨이의 4스피커인 이 제품은 기본적으로 베이스 리플렉스형이지만 5인치 미드의 중역은 밀폐형이다. 왜냐하면 고역·중역·저역이 각기 별개의 쳄버로 나누어진 채 상부와 하부만 덕트가 트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계를 트윈 베이스라고 부르는데 그래서 어김없이 밀폐형의 중역대가 대표 소리를 내준다. 보컬이 그래서 가장 주특기다. 오페라라는 이름의 요인이 거기 있는 셈이다.

미드는 5인치고, 저역은 도프라는 식물성 페인트칠을 한 7인치 페이퍼 콘 2발, 트위터는 1인치 실크 돔이다. 트위터는 노르웨이의 시어스 사 제품이지만 그 외 유닛의 생산지는 아마 회사 기밀인 모양이다. 그래봐야 아마 유럽산이 틀림없겠지만. 인클로저는 기본적으로 마호가니 마감인데 국내 수입품은 약간 어두운 라이트 체리목이다. 이것이 주는 매력이 각별하다. 방 안을 약간 그늘지게, 그리고 품위 있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추억과 회오 같은 것이 그 안에 맴돌고 있는 특이한 색상인 것이다.

4Ω에 90dB의 구동조건을 지닌 이 기종은 앰프가 30W에서 180W의 범위 내에 든다면 괜찮다고 되어 있다. 필자가 울려본 앰프는 A클래스 42W와 역시 A클래스의 110W 진공관 제품. 하나는 3극관이고 하나는 KT88을 사용한 UL사운드의 노블이라는 제품이다.

불성실하지만 하단부의 스파이크는 장착하지 않았다. 분석적이고 해상력이 뛰어난 성향은 아니다. 그러나 왜 그들이 오페라에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음장감이 오페라 실연장처럼 넓게 펼쳐지면서 성악의 명료함과 우아함이 사실적으로 전달된다. 약간 쏘기 쉬운 파바로티나 프랑코 코렐리의 음성도 매끈하게 달고 넘어간다. 남성악이 좋으면 여성악도 좋다. 현악기들은 미세하게 도톰한 편.

그러나 피아노의 터치는 생각 이상이다. 자연스럽고 실체감이 충만하다. 어떤 사람은 재즈의 생기가 약간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재즈는 집에서 듣는 장르가 아니다. 현장에서 좀 어수선하게 들어야 하는 장르인 것이다. 그 의구심도 사라 본의 노래들에서 대부분 해소된다. 이만한 가격대에 이렇게 미려하고 원만한 스피커를 만나기란 사실 불가능하리라 생각한다.

[ 출처 - 월간 오디오, 2007년 6월호/ 오디오 평론가 - 김남 ]